경복궁과 원유 그리고 창덕궁 비원

경복궁은 조선의 정궁입니다. 조선의 태조는 1394년 수도를 개성에서 한양으로 옮겨 1395년에 조성되었으며 이후로 궁담과 경희루 등 차차 만들어졌으며 창덕궁은 1405년에 비원은 1904년에 그 명칭을 얻었습니다.

경복궁과 원유 그리고 창덕궁 비원
경복궁과 원유 그리고 창덕궁 비원

조선의 정궁인 경복궁

경복궁은 태조가 1392년 7월 개성의 수창궁에서 즉위한 후 수도를 옮기기로 결정하고 1394년 10월 한양으로 도읍을 옮겨 1395년 9월 경복궁이 조성되었습니다. 이 경복궁이란 이름은 세종 8년(1426년) 10월에 정하여졌는데 1935년 정도전은 신궁의 이름을 경복이라 한데 기인하고 있습니다. 그 후 1426년 궁문을 만들었고 근정전의 제1문을 홍례문, 제2문을 광화문, 근정전 동 협문을 일화, 서 협문을 월화, 궁의 동문을 건춘, 서문을 영추, 근정전 앞 개울의 다리를 영제하고 하였습니다. 이때 없던 경복궁의 북문은 세종 15년(1433년) 7월에서야 만들어졌으며 이름을 신무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세조 1456년 후원에 연못을 파고 취로정이란 정자를 짓고정자 앞 연못에 연꽃을 심었으며 성종(1474년) 때 경회루를 다시 지었습니다. 경복궁의 터는 원래 고려의 이궁터 남쪽에 자리 잡은 것으로 풍수지리의 형국으로 보면 진산인 북악을 두고 동에는 청룡의 지세인 낙산 서에는 백호의 지세인 인왕산 남에는 안산인 남산이 자리한 명당자리인 것입니다.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에서 시작되는 한양의 중심도로인 주작대로는 남으로 향하여 뻗어 있었으며 그 좌우에 육조의 관청이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궁 주위의 각 문들은 동 청룡 서 백호 남 주작 북 현무의 사신을 각각 상징하고 있습니다. 궁궐 내의 정치적 공간으로 근정전과 사경전 회랑 및 행각 내의 공간에는 일체의 수목은 조성하지 않았으며 침전 북쪽공간인 상원공간은 휴식과 수학을 할 수 있는 조원공간이며 경복궁 신무문 밖 북악산 산록에도 후원이 조성되었습니다.

경복궁의 원유

경복궁의 원유는 향원정과 향원정 주위 그 동쪽에 녹산 침전 서쪽에 연결된 경회루 방지와 궁 내를 북에서 흘러 동으로 빠져나가는 명당수인 어구 주위 광화문 안 양쪽에는 방지가 있었습니다. 광화문에서 근정문에 이르는 외조공간은 원림이 울창한 조원공간이었습니다. 지금의 청와대 자리가 경복궁의 후원이 있던 위치였습니다. 경복궁의 원유 중에 고종시대의 원형이 남아 있는 곳은 경회루 방지 향원정과 향원지 자경전 화장 교태전 후원인 아미산등이 있습니다. 경회루와 그 방지는 조선왕궁의 원지 가운데 가장 크고 장엄하게 만들어졌습니다. 경회루가 있는 섬에 들어가는 길은 3개의 아름다운 석교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경회루는 정면 7칸 측면 5칸의 다락집인데 48개의 석주가 받치고 있는 모양입니다. 경회루 방지 서쪽에는 만세산을 만들어 화려한 꽃을 심고 봉래궁 일궁 월궁 벽운궁 등 상징적인 작은 모형궁을 만들어 배치하고 금은 비단으로 장식하기도 하였습니다. 경회루 방지의 수원은 못바닥에서 솟아나는 지하수였습니다. 못 속의 두 섬에는 소나무가 심어져 있고 북쪽과 서쪽의 못 가에는 느티나무 회화나무가 심겨 있습니다. 경회루 방지 주위는 모두 담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출입문은 강령전 교태전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경복궁 향원정이 있는 섬에는 철쭉 등 관목류의 화목이 심어져 있고 못 속에는 연꽃을 심어 놓았으며 못가의 언덕에는 느티나무 회화나무 배나무 소나무 산사나무 버드나무 참나무 단풍나무의 원림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보물 제810호인 자경전의 화담굴뚝은 담벼락같이 만들어져 있는데 벽면에 해 산 구름 바위 소나무 거북 사슴 학 불로초 등 십장생과 바다 포도 연꽃 대나무가 장식되어 있습니다. 왕비의 정침인 교태전은 중궁전으로 경복궁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교태전의 후원 단으로 조성된 아미산은 중국의 선산을 상징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미산에는 6 각형 꽃전으로 아름답게 축조한 굴뚝 4개가 서 있는데 화계의 화묵과 단위의 수림과 잘 조화되어 아름다운 경관을 조성하고 있습니다. 아미산 교태전 굴뚝은 보물 제81호로 지정되어 있어 그 아름다움의 가치를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창덕궁 비원

창덕궁은 1405년 조선왕궁의 이궁으로 창건되었습니다. 이후 여러 역사적 어려움을 겪고 1610년 광해군이 창덕궁을 복구하면서 후원에 소정을 짓고 기화 이목 괴석을 모아 화려한 원유를 조성했는데 그 기교와 화려함이 예전에 없었다고 ‘광해군일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비원이란 명칭은 광무 8년(1904년)부터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1636년 인조는 옥류천 주위에 소요정 청의정 태극정을 짓고 1644년 존덕정을 1645년 취향정을 1692년에는 애련지와 애련정을 1704년에는 대보단을 조성하였으며 1766년 영조는 규장각을 짓고 정조는 부용정을 개축 1828년 순조는 민가양식의 연경당을 건립하였습니다. 비원 속에 담겨 있는 사상적 흐름을 살펴보면 지형의 선택이나 조영물의 배치에서 자연을 영물로 본 풍수사상이 지배하고 수학하는 독서방이나 주합루 같은 누정에서는 음양오행의 철학적 사색을 하며 천인합일의 유학사상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원림이나 계류 괴석 정자 같은 요소에서는 불로장생하는 신선사상과 아울러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는 자연주의사상도 흐르고 있습니다. 창덕궁 후원에는 원래 관상수를 심지 않았으며 화포를 조성하지 않고 자연의 그대로 전지를 하지 않는 등 자연의 섭리 그대로를 존중하는 형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건물주위에는 철쭉 매화 앵두 배나무 모란 함박꽃 대나무 등 화목이 심어져 있고 경사지역에는 단을 지운 화계가 조성되어 철쭉 모란 매화 앵두 등 관목류를 조성하였습니다. 비원의 원림 속에는 인간의 자연화와 자연의 인간화를 추구하는 아름다움이 있으며 원림 건물과 연못 괴석 담장 석교 계간 폭포 천정 암석 기구 보도가 지세에 따라 적절히 융합되어 계곡마다 다른 경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안에 천원지방의 음양사상이 담긴 부용정과 불로문 내의 북쪽 정방형의 애련지는 특히 그 아름다움을 계절별로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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