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조경사는 헤이안시대 이후부터는 고대의 유적과 일본 고유의 사상과 종교 그리고 자연적인 여건과의 융화 또는 결합에 의해 독특한 양식 탄생, 헤이안 시대와 침전조 정원에 대해 알아봅니다.

일본 조경사
일본의 조경사는 한국과 중국으로 부터 영향을 받아 많이 발전되었으며 상고시대와 고대 중세 근세 현대 등으로 표현되어 구분됩니다. 상고시대는 문화의 태동기로 일본 열도에서 국가의 형태를 갖춘 부족국각가 탄생하고 이때에 불교와 유교가 전래되고 그 사회적 영향 속에서 조경문화가 싹트기 시작하였습니다. 고대는 3개의 부족국가가 형성되는 과정 속에서 초기에는 상고시대의 사상적 영향을 크게 받았으나 백제로부터 불교의 전래와 백제인의 이민으로 인한 문화 전래 그리고 무역의 확대로 인한 중국과의 교역이 이루어지면서 한국과 중국의 영향이 조경에서도 큰 영향을 나타내게 됩니다. 헤이안 시대 이후로부터는 중국 당의 침전조 건축양식이 도입되고 정토사상이 대두되면서 침전건축물을 중심으로 한 회유임천식 정원양식이 발달하게 됩니다. 중세에 접어들면서 초기에는 정토사상이 조경에 큰 영향을 끼치었으나 14세기에는 선사상이 대두되면서 정원은 건물로부터 독립하여 회화적으로 표현되고 고산수수법이라는 일본 고유의 양식이 탄생되게 됩니다. 근세는 다정이라는 양식과 15세기 후반부터는 바다 풍경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평정고산수수법 그리고 회유회유임천식이라는 양식이 정착화되는 시기로 실용적 가치보다는 기교와 관상에 치중한 세부수법이 발달된 양식으로 완성이 되어지게 됩니다. 현대 접어들면서 이전의 조경양식과 함께 문호개화 산업의 발달 서구문화의 흡수 등 상황변화에 따라 메이지 30년까지는 기존 양식이 유지되다가 말기부터는 유럽정원양식이 나타나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다이쇼기로 접어들면서 일본의 고대양식에 대한 복고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면서 차경을 중시한 자연주의 조경양식이 정착을 하게 됩니다. 자연풍경을 이상화하여 독특한 축경법에 따른 상징화된 모습으로 표현하는 특징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헤이안시대 조경
헤이안시대 조경의 사상적 배경은 나라시대와 같이 불교사상과 봉래사상으로 초기에는 중앙정치의 안정속에서 영원한 번영과 장수를 기원하는 상징적 의미 속에서 봉래사상이 정원의 주를 이루였으나 후기에는 정치불안과 사회구조의 불안정 속에서 새로운 세계의 구현을 위한 정토사상이 새롭게 나타나기 시작하며 극락정토를 기원하고자 하는 양식이 두드러지게 나타남을 알 수 있습니다. 이에 오늘날 정토정원이라 불리는 형태가 등장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불교적 의미를 벗어나 조형적 의미와 가치를 객관화한 양식의 탄생을 의미합니다. 헤이안시대 전기의 뛰어난 정원으로는 신천원과 차아원을 꼽을 수 있으며 신천원은 자연적인 경관 공간구성과 함께 인공적으로 입석을 적절히 부분적으로 배치한 정원으로 후기에 나타나는 침전형 정원의 초기형태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신천원과는 다르게 도시밖에 조영된 차아원은 자연 풍물에 순응한 자연풍경식 정원으로 차아천황의 이궁으로 814년에 처음 이용된 후 여러 번 천황에 의하여 사용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이곳의 연못을 대택지라고 하였는데 남동으로 경사진 지형을 이용하여 남에서 동으로 긴 제방을 축조하여 북서쪽으로부터의 유수를 모아 인공적인 큰 연못을 조성한 곳입니다. 이 안에 여러 섬과 입석 경석이 남아 있는데 중국과는 또 다른 특성을 잘 나타내어주고 있습니다. 헤이안시대 중후기는 중앙권력이 약화되어지면서 지방의 무사계급이 등장하게 되고 이어서 이들은 지방 귀족계급으로 자리잡게 되면서 정원조경 또한 영향을 받게 됩니다.
침전조 정원
헤이안중기는 등원시대로 건축에서는 순화미의 침전조 주택 형태가 완성되고 조경에서는 이에 따른 침전조 정원이라는 독특한 형태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침전조 정원은 건물과 정원의 전형적인 관계로서 삼위 이상의 계급 저택에서 볼 수 있는데 부지는 평안성의 규제에 따라 사방 1정을 기준으로 하며 중앙에는 건축물로서 침전이 남쪽에 위치하며 침전의 좌우 또는 후원에는 별동의 별채건물이 있었다. 그 외 여러 건물들은 도전 또는 세전이라 불리는 회랑에 의하여 연결되고 동과 서쪽의 별채에서부터 남쪽으로 중문랑이 연결되어 있고 그 남단에는 연못에 접한 조전이 세워지기도 하였습니다. 정원의 중심건축이라 할 수 있는 조전은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고 가을에는 밝은 보름달을 감상하며 겨울에는 흰 눈을 감상하는 정자 역활도 하였는데 때로는 낚시 뱃놀이를 위한 승하선 장소로도 이용되었습니다. 침전조 정원의 원형으로 잘 알려진 것은 동삼조전으로 평안에 있는 등원양방의 저택이 대표적입니다. 침전조정원에서의 주경은 연못이라 하지만 그 면적이 커지면 대해의 형태로 바다의 경관연출을 즐겨 사용하였으며 아스카와 나라 때부터 내륙에 사는 귀족들이 여기에 취향을 보였다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연못의 급수는 교토의 지형 여건상 부지의 북동부에서부터 도입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를 유수라 하며 이 경우 대부분 음양오행 사상에 의한 길상에 따랐습니다. 헤이안시대의 후반부로 갈수록 정토사상에 따른 정토정원이 탄생하게 되었고 이는 수미산사상 신선사상의 영향으로 현세에 정토계를 구현하고자하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