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누정 경관기법 허 원경 취경과 다경에서 우선 조선시대 후기에 접어들면서 누정의 수가 증가하고 문화교육 풍류생활의 공간으로 누가 이용되면 경관기법등이 발전하게 되고 그 기법으로 허 원경 취경과 다경등의 여러 기법들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누정
조선시대초기에는 정책 등의 원인으로 누정의 건립이 시원치 않았습니다. 수령들이 백성을 돌보지 않고 누각을 지어 술을 마시고 시를 짓는 등 풍류에만 빠져 있음을 걱정하여 세조(1453년)가 전국 각도에 누각을 짓지 못하도록 영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550년대까지 그 수가 증가했으나 임진왜란(1592년)과 병자호란(1636년)등으로 인해 많은 수의 누정들이 소실이 되었습니다. 이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주정의 수가 점차 증가하였고 1850년대에 이르러서는 누정의 수가 700여 개소 정자가 1100여 개소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1600년대 이후로 사화 당쟁 등의 여러 가지 사회정치적 원인에 의해서 한양 중심의 유교문화가 지방으로 분산되면서 서원 향교 누정을 중심으로 한 지방 유교문화 경관이 형성된 것이 그 원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유교문화가 활발해진 지방에서 문학과 교육 그리고 풍류생활의 공간으로 정자를 많이 만든 것이 그 이유인 까닭입니다. 조선시대 누정양식의 최전성기는 18~19C로 알려져 있습니다. 1650년대 이후로부터 1910년대까지의 누와 정자를 살펴보면 각 도별로 차이가 있기도 했습니다. 누와 정자는 일면 비슷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건물구조 이용형태 역사적 발달과정 만든 사람 등에 따라 서로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정의 건축적 특성을 보면 누는 규모가 크고 정자는 그 크기가 좀 작습니다. 일반적으로 누는 방이 있는 경우가 적으며 마루가 높고 단청을 한 화려한 건물인 반면 정자는 규모가 작고 다양한 평면형태를 갖고 있습니다. 또 당 헌과 같이 주거지향성이 높은 조선시대의 주택과 경관지향성이 높은 누정 사이의 공간성격을 비교하면 그 성격이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누정 경관기법 허와 원경
누정에서 사용한 경관처리기법에는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허(虛)입니다. 손순효의 글에 보면 “누가 비어 있으면 능히 만 가지 경관을 끌어 들일 수 있을 것이요, 마음이 비어 있으면 능히 선한 것을 많이 담을 것이다.”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누정이 허하기 위해서는 우선 입지조건이 중요합니다. 주변을 살펴보면 동산이 계류와 접하여 절벽이 만들어진 곳을 흔하게 보곤 합니다. 이런 절벽 위에 만들어진 정자가 있어 마루 끝에 앉으면 멀리 푸른 산이 보이고 눈 아래로는 푸른 물이 보일 것입니다. 이러한 느낌이 바로 허(虛)인 것입니다. 함허정의 기문을 쓴 김일손은 “누 성곽 산봉우리구름 수목 등이 물속에 거꾸로 잠기지 않은 것이 없다”라고 하여 물과 관련된 허의 개념을 표현하였습니다. 누정은 입지조건과 건물구조에 의해 허의 개념이 달성될 뿐만 아니라 누정 주변에 있는 물에 의해서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누정의 이름 중에는 멀 원(遠) 자가 들어가 있는 것을 종종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먼 곳에서 조망하는 누란 의미가 담겨 있으며 이름같이 시원하게 트인 경관을 본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서거정의 명원루 기문에서 보면 “누에서 보이는 원경은 단순히 원경을 보는데 그치지 않는다. 누에 오른 사람들은 원경을 봄으로써 맑고 시원함을 느끼게 되어 평소 갖고 있던 답답함과 막힌 뜻을 통하게 되고 장래의 원대한 계획을 세울 수 있다”에서 그 이름이 담고 있는 의미를 심리적인 부분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유명하였던 누는 멀리 있는 청산이 대개 누로부터 10km 이상 떨어져 있어 넓고 긴 조망거리를 갖고 있습니다. 누정에서 보이는 청산은 전설이 깃들여 있는 산이며 유명한 사찰이나 산성이 있어 역사가 있는 산인 것입니다. 풍수지리설에 의해 지기를 믿은 선조들은 그 청산의 지기가 이곳까지 와닿음을 느낄 수 있었고 또 그 산 아래에는 이 지역을 관할하는 분이 계시는 곳이기도 하며 청산은 비가 갠 후면 더욱 가까이 느껴지기도 하는 곳입니다.
누정 경관기법 취경과 다경
취경기법이라 함은 먼 곳에 있는 여러 경관들을 한 곳의 누정에 모은다는 뜻인 것입니다. 이런 기법에 대해서는 많은 기문과 시문 및 서문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한 고을의 좋은 경관들이 모두 누각 한 점에 모였다든지 또는 강산의 좋은 경관들이 모두 자리에 들어왔다든지 풍경을 모두 거두어들였다든지 멀리 있는 좋은 경관들이 발과 책상 사이에 다 모였다든지 또는 한 고을의 좋은 경관을 독차지하고 있다는 등 다양한 표현이 있습니다. 공통적인 개념은 자연경관을 누정 한 곳으로 모이게 한다는 적극적인 수렴방식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취경이 되면 많은 경관이 모여지므로 자연히 다경(多景)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현존하는 정자 가운데 이와 같은 개념을 잘 나타내는 한 곳은 관동팔경 중 하나 청간정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청간정은 서로 다른 경관요소들을 가진 조망축이 발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정자는 절벽 위 구릉에 위치하여 이들 경관요소들을 모두 한 곳에 끌어 모을 수가 있어 취경의 기법이 잘 적용되고 있습니다. 바다와 하천이 만나는 지점의 구릉 위라 다경도 이룰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다른 예는 두 강이 만나 하나의 강으로 흘러가는 지점의 언덕 위에 세워진 정자인 것입니다. 역시 서로 다른 조망축이 계곡을 따라서 발달하여 취경과 다경을 이룰 수 있는 곳입니다. 경북 문경의 봉생정에서도 이와 같은 점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