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 사찰경관과 안압지 포석정

통일신라 사찰경관은 불교가 국가적으로 장려되고 교종과 선종 등 여로교파로 분화되고 그 수가 증가됨에 따라 사찰경관도 변화하게 된다. 현재 남아있는 궁전지 임해전의 안압지와 포석정에 대해 알아봅니다.

통일신라 사찰경관과 안압지 포석정
통일신라 사찰경관과 안압지 포석정

통일신라 사찰경관

삼국을 통일한 초기 통일신라 사찰경관은 사찰의 배치형식에 있어서 통일이전의 탑금당 중심형이 유지되고 있으나 탑의 배치는 1탑 식에서 쌍답식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남북 중심축선상에서 남쪽으로부터 중문 금당 강당이 배치되며 금당 전면에는 동탑과 서탑이 남북 측으로부터 동일한 거리에 배치되었고 중문과 강당을 연결하는 회랑이 금당과 쌍탑을 둘러싸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유형은 통일신라 전기에 출현하였다가 후기에 사라지는데 사천왕사 망덕사 감은사 불국사 등이 이런 형식에 속합니다. 통일신라 중기 이후부터는 선종이 성행하게 됨에 따라서 불교의 내적 성찰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으며 이는 민간신앙이었던 영지신앙과 결합하여 금강산 오대산 태백산 가야산 지리산 등 많은 영산과 명산에 사찰을 짓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통일신라 사찰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대표적인 사찰은 감은사와 불국사 화엄사 등이 있겠습니다. 감은사는 양북면 용당리에 있었으며 감은사 터는 682년에 문무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서 세워진 절터였습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문무왕은 유언에 의해 화장되어 바닷속에 있는 동해대암에 안치되었으며 그를 추모하기 위해 부근의 언덕 위에 감은사를 세웠는데 문무왕의 혼이 용이되어 출입할 수 있도록 금당 밑으로 해수가 들어오게 만들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불국사는 법흥왕 22년(535년)에 창건되었고 8세기 중엽 경덕왕 때에 김대성에 의해 중창되었습니다. 불국사는 신라 당시의 석출물들이 유명한데 대웅전 앞의 석가탑과 다보탑의 쌍탑은 모두 8세기 중엽의 대표적 석탑이며 신라인들의 돌 다루는 솜씨를 최대한으로 과시하고 있습니다. 화엄사는 대표적인 산지사찰에 속하며 전남 구례군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진흥왕 5년(554년) 창건되었으며 현존 목조건물은 임진왜란 때 모두 소실되고 이후에 중건된 것입니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우대칭이 되지 않는 것과 회랑이 없는 점 입체적으로 형성된 공간구성 등 회랑식의 평지사찰이 산지지형에 적응하여 중정식으로 변화된 산지사찰의 특성임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통일신라 안압지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는 삼국을 통일함과 더불어 674년 안압지를 만들었으며 679년에는 웅장하고 화려한 궁궐을 세우고 여러 개의 대문들이 있는 규모가 큰 동궁을 새로 건설하였으며 717년 새 궁을 건설하였으며 여러 차례 궁을 수리하고 확장하는 공사를 진행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월성 동북방의 임해전 궁전지가 현재 남아있는 유일하며 건물터 동쪽에 위치한 안압지와 더불어 당시 궁전의 일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안압지가 조성될 때의 시대적 배경은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통합할 때입니다. 문무왕이 삼국통일을 끝내면서 막강한 국력을 바탕으로 한 기술자와 노동력을 총 동원하여 만든 정원일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안압지는 문무왕 14년(674년) 2월에 ‘궁 안에 연못을 파고 산을 쌓아 화초를 심고 진귀한 새와 짐승을 길렀다’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동사강목에는 ‘궁궐 내 연못을 파고 돌을 쌓아 무산 십이 봉을 본뜬 산을 만들어 꽃을 심고 진기한 새를 길렀다. 그 서쪽에 임해전이 있었으며 지금 그 연못을 안압지라 부른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때 만든 연못이 바로 안압지인 것입니다. 안압지와 임해전은 남북축선을 따라 주요 건물들을 배치하면서도 궁전의 기본 건물들은 안압지를 끼고 배치시켜 인공적인 건축물과 자연적인 정원을 서로 잘 조화시키고 있습니다. 신라의 궁원은 자유롭게 굴곡진 연못과 그곳에서 파낸 흙으로 만든 크고 작은 여러 가지 모양의 섬, 화초, 그곳에서 기르는 짐승등이 주요 조경요소로 등장하며 이것은 바로 산수풍경식 궁원의 기본형식임을 알 수 있습니다.

포석정

포석정의 위치는 경주 남산에 위치하며 그 형태는 타원형으로 안쪽이 12개 바깥쪽이 24개의 다듬은 돌로 조립되어 있으며 물이 흘러드는 입수구는 양쪽 돌이 6개이고 물이 나가는 꼬리 부분은 4개의 돌로 구성되어 모두 46개의 다듬은 돌로 짜여 있습니다. 곡수거의 규모는 물도랑의 폭이 31센티미터이고 깊이는 21센티미터에서 23센티미터이고 수로의 길이는 총 22미터에 이르고 있습니다. 바닥의 기울기는 입수구 쪽이 7~13도이고 중간 부분은 1~2도 출수구 쪽이 1도로 처음에는 물이 빨리 흐르다가 타원형의 부분에 이르러서는 천천히 흐르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경주 남산 서쪽 기슭의 울창한 느티나무 숲 속에 있는 포석정은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워 유상곡수연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유상곡수연은 굴곡된 물도랑을 따라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워 그 잔이 자기 앞을 지나기 전까지 시를 한 수 지은 후 그 잔을 들어마셨다는 풍류놀이를 말하는 것으로 중국의 고전문헌에도 찾을 수 있는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포석정이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과거에는 정자가 같이 있었다는 것을 추측하여 알 수 있습니다만 현재는 모두 소실되고 물도랑만 남아있는 상태입니다. 서거정이 쓴 동국통감에 경주 포석정 근처에 성남이궁이 있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이 포석정은 성남이궁에 부속된 정원이었다는 것이 추론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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